백일장 모음집

좋은돌봄그길을따라가다 백일장 모음집 좋은 돌봄, 그 길을 따라가다

좋은 돌봄, 그 길을 따라가다

002 백일장 모음집 우리의 마음속에 새로운 돌봄이 켜지기를 바라며…… 인사말 동남센터의 〈돌봄을 켜다〉라는 브랜드는 불을 켜는 것 처럼 돌봄의 가치를 사회 속에 밝히고 퍼트린다는 의미 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돌봄에 대한 가치를 재조명하고 시민들의 인식 속에서 돌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돌봄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취지 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돌봄을 켜다〉라는 슬로건으로 돌봄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매년 정하고 시민들의 참여로 시와 수필 부분에 대한 백일장을 개최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학생들부터 장기요양요원, 장기요양서비스를 받고 있거 나 돌봄을 하고 계신 가족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돌봄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 주셨습니다. 치매 어르신들 돌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 부모님을 돌보면 서 어렸을 적 자신을 돌봐주셨던 부모님의 모습들을 이

003 야기해 주시는 분,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부모님을 따뜻 한 마음으로 돌봐주는 이야기,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돌 아보고 돌봐드렸던 이야기 등 글을 읽으며 나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다는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들. 각자의 자리에서 돌봄을 경험하고 실천해온 분들의 진 솔한 목소리로 가득한 글 속에 담긴 따뜻한 시선과 깊은 감정은 우리 모두에게 돌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 사회가 더욱 배려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 아가는 데 큰 울림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년 귀한 글을 보내주신 분 중에 수상작을 선정하여 달력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고 인식 개선 캠페인 때 시 화전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달해 드렸었 는데 올해는 5년 동안 모아 온 수상작을 한데 묶어 책자

004 백일장 모음집 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귀한 글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모음집이 많은 이들 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 다. 또한 돌봄의 참된 가치를 전하고 나아가 서로를 더 욱 이해하고 존중하는 좋은 돌봄을 만들어 가는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남어르신돌봄종사자지원센터 최윤형 센터장

005 좋은 돌봄을 생각하며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모두 직접 느끼지 못하 더라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고 있고, 그리고 기꺼 이 비켜가고 조심하는 지점에서는 서로 돌봄을 주며 배 려하는 순간들을 살고 있는 모습들을 엿보게 됩니다. 우 리 모두 어느 지점, 어느 순간에는 돌봄을 받고 그리고 주는 일들에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좋은 돌봄이란 무엇일까요? 어떠한 돌봄이 좋은 돌봄일까요? 좋다는 의미가 상당히 주관적이기에 어느 하나의 기 준으로 규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시각 이 모아지면서, 여러 다른 주관들이 함께 바라보면서, 그 리고 서로가 같이 머리를 맞대면서 찾아질 수도 있을 것 입니다. 특히 돌봄이 필요한 다양한 상황들과 서로 다른 시각, 서로 다른 시점, 서로 다른 조건들을 감안할수록 더 좋은 돌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돌 축사

006 백일장 모음집 봄을 받는 사람, 그리고 돌봄을 주는 사람 모두의 시각 이 포함되어야 하겠지요. 한꺼번에 여기서 모든 시각을 다 들여다볼 수 없다면, 우선 돌봄을 받는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무엇이 좋은 돌봄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돌봄이 좋게 보여 집니다. 신뢰: 수치, 불편 등을 잠시 참고 기다리며 서로 헤아 릴 수 있는 돌봄 돌봄과 자립: 필요한 만큼의 돌봄과 가능한 많은 자립 자극과 지지: 지향하는 방향을 두고 함께 바라보는 돌봄 삶과 죽음: 그렇지만 적응하고 변화해가는 돌봄 감사: 돌봄이 끝나더라도 돌봄의 의미가 남는 돌봄 이러한 돌봄이 시작되려면, 우선 신뢰를 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쌓아진 신뢰를 바탕 으로 돌봄이 돌봄과 자립의 지점, 자극과 지지의 지점, 그리고 삶과 죽음의 지점 등을 점검하고 감안하면서 진 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돌 봄이라도 마무리가 있게 마련이며, 마무리는 감사가 아 닐까 싶습니다. 저는 여기 소개되는 작품들을 통해 이러한 모습의 “좋

007 은 돌봄” 가능성을 엿보게 됩니다. 우리 주변의 좋은 돌 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신뢰, 자립, 지지, 삶과 죽음, 그 리고 감사가 마음에 스며들며 제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결국 이러한 내용으로 받는 입장 에서 바람직한 돌봄이 가능하려면, 주는 입장에서도 그 러한 내용의 돌봄이 제공될 수 있는 조건들이 가능해져 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단법인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이사장 백도명

‐백일장 모음집 ‐ 2020

012 백일장 모음집 나는 누구일까요 아침마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편히 주무셨어요?” 밝은 웃음으로 현관에 들어서면 “선상님~ 오셨어요” 반겨주시는 어르신 커피 한 잔과 소소한 이야기로 일과를 연다 구수한 된장국에 정성 한 숟갈 조물조물 나물에는 사랑 한 조각 정성스레 점심을 차려드리면 “맛있게 잘 먹었어요.” 김정란

013 퇴근할 때면 날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내일 봐요.” 때로는 엉뚱한 오해와 사회의 편견으로 마음이 무너져도 감사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나는 오늘도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014 백일장 모음집 우리 엄마 100세 하고도 다섯 그 긴 세월 6남매 키우고 가르치시느라 허리는 할미꽃이 되고 헬렌켈러처럼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셨네 두 손 더듬더듬 혼자 다 하시며 “고맙다 미안하다.” 내 생각만 하시네 우리 엄마 100세 하고도 다섯 나도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엄마 이순희

015 지난 세월 이야기 보따리엔 억수로 고생한 시집살이 한가득 한이 끝없이 잘잘잘 찡그린 얼굴 주름엔 굽이굽이 한과 보답이 쌓인다 추스르고 앉아 되뇌어본다 억수로 고생한 어르신의 삶을… 추억 보따리 최숙희

016 백일장 모음집 가을날의 치매 어르신 고종숙 붉은 단풍이 물들어 어느새 내 마음은 나그네가 되어버렸다 집에 들어가 어르신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꽃 침묵으로 답한다 그 입술 열릴 때까지 빠르게 달려가는 세월 떠나신 후에 나를 들여다본다 가을날의 치매 어르신 고종숙

017 2018년 10월 22일 은행이 떨어지는 가을날, 투석 병원에서 어르신을 처 음 만났다. 키가 작고 왜소한 몸에 밖으로 튀어나온 혈관은, 오랜 세월 투석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20년 전부터 투석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관절도 좋지 않아 못 걸으시어 휠체어를 타고 계셨지 만 밝은 미소로 환하게 반겨 주셨다. 7월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처음으로 어르 신을 케어하게 되어 낯섦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르신 께서는 가슴으로 포근히 감싸주셨다. 어르신은 늘 딸 한 명만 있어 외롭다고 하시며 “내 딸 하자~ 정말 내 큰딸 해라”하고 말씀하셨다. 나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 리웠기에 우린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다. 더 긴 세월 함께하고 싶었지만 2020년 추운 초봄에 어 르신은 우리 곁을 떠났다. 함께하는 시간에도 물 한 모금 마음대로 못 드시고 기 은행이 떨어지는 계절이면… 류미숙

018 백일장 모음집 운 없어 하셔서 마음이 아팠는데,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다. 은행이 떨어지는 가을, 나 를 향해 웃어주셨던 어르신의 밝은 미소가 생각났다. “어르신! 코로나로 인해 작별 인사도 못 드려 죄송합니 다. 어르신 사랑 잊지 않을게요. 거기서는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튼튼하게 운동도 하 시며 지내세요. 다음 생에 우리 또 좋은 인연으로 만나 요, 어르신… 아니 엄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019 10월 10일 토요일 일주일에 하루, 단 3시간만 뵐 수 있는 어르신 댁에 출 근한 지 4번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어떤 유쾌한 이야기 를 들려주실까? 난 토요일이 은근히 기대된다. 내가 찾아뵙는 어르신은 작은 체구에 한 번 들으면 절 대 잊혀지지 않는 예쁜 이름을 가지신 분이다. 허리가 불 편하신 어르신은 식사 시간과 화장실 이동 외에는 줄곧 침대에 누워 생활하신다. 청소와 설거지를 마치면 어르신의 침상 옆에 앉아 다 리를 주물러 드리며 어르신의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들 어드린다. 어르신이 시집와서 겪으신 일, 형제자매 이야 기, 군대에서 운명을 달리한 작은오빠의 슬픈 이야기, 추 석 때 자녀분들이 찾아와서 너무나 기뻤던 이야기들……. 즐거운 이야기의 끝에는 늘 “내가 89세야. 너무 오래 살았어. 금년은 넘기지 말아야 하는데… 꼬라지가 이러 니 자식들한테도 짐이고. 갑자기 허리가 아프니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 귀도 너무 커서 남들이 나보고 오 따뜻한 3시간 박진하

020 백일장 모음집 래 산다는데 난 정말 싫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 눈가 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어르신 그런 말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아냐, 아 냐”하시면서도 입가에는 슬픈 미소가 번진다. 어르신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다. 퇴근 준비를 하는 내 등 뒤로 어 르신이 유쾌하게 말씀하신다. “보호사님 퇴근시간 10분 초과!! 하하하” 내가 퇴근하면 덩그러니 혼자 남아 저녁 까지 침대에 누워 계실 어르신은, 내 걱정이 먼저다. 항상 나를 먼저 배려해주고 위해 주는 어르신의 마음에 퇴근 길이 따뜻해졌다. 난 이렇게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로서 인 연을 맺었다. 엄마 같고, 할머니 같은 다정한 어르신이 나 는 참 좋다. 깊어가는 가을, 곱게 물든 단풍잎을 보여드리면 참 좋 겠다. 다음 주에는 어르신 머리맡에 작은 화분이라도 가 져다 놓아야겠다. 어르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어르신을 오래오래 찾아뵙고 싶어요.

021 80세 되시는 치매 어르신을 2년 넘게 돌봤다. 어르신은 스스로 당신의 모습을 부정하셨다. 50대에 멈춰 있었고, 항상 가장 핫한 모습이셨다. 선글라스는 보통 2~3개 머리 위에 걸치셨고, 손가락에 반지 여러 개는 기본. 립스틱이라도 발견하면 눈썹 그리고, 입술 바르고 손톱은 화려한 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옷 은 거의 원피스를 입으셨는데 당신 마음에 들게 자르셔서 입곤 하셨다. 언제나 당신을 꾸미는 걸 좋아하시던 모습 에, 화려한 분들을 보면 절로 어르신 생각이 난다. 그런 어르신이 어느 날, 나를 바라보며 꽃길만 걸으라 고 했다. 나는 웃으며 꽃길이 어디 있는지 몰라 못 걷는 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린 배꼽을 잡았다. 나도 어르신도, 우리 모두 걷고 싶은 길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 모두 가는 길이 꽃길이었으면 좋겠다. 어르신도 여전히 핫한 모습으로 꽃길을 가시길 바라고 고대해 본다. 우리 모두 꽃길이어라 서정

022 백일장 모음집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어르신 댁에 걸어가는 동안 바 지와 운동화가 다 젖었다. 철퍽거리는 신발을 벗어 놓고 옷을 갈아입는데, 어르신이 바지와 양말을 달라고 하신 다. 선풍기 바람에 말리면 마른다고 하시며 옷걸이에 걸어 놓으신다. 더운 날은 땀부터 식히라고 해주시고,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은 젖은 옷을 말리도록 배려해 주시는 어르신. 그 따스한 마음과 손길을 통해 감동이 밀려온다. 퇴근할 땐 뽀송뽀송 마른 바지를 입고 가벼운 발걸음 과 밝은 웃음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나를 생 각해주시는데 나도 더 잘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는 날 이다. 남편과 딸한테도 자랑해야지, 배려심이 많은 좋으 신 분을 만났다고……. 비 오는 날 서명자

‐백일장 모음집 ‐ 2021

026 백일장 모음집 세상에 봄이 들어가는 단어는 참 따사로운 것 같다 꽃이 피는 계절의 봄 봄에 태어났다는 뜻의 나봄 건강의 회복을 돕는 돌봄 오늘도 누군가는 돌봄의 불빛을 켠다 그들의 손이 되어주고, 귀가 되어주고 손과 다리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준다 그들이 켠 불빛이 모여 세상을 환하게 비췄고 한 사람의 세상도 따사롭게 비췄다 돌봄의 불빛을 켜다 조수현

028 백일장 모음집 깜빡깜빡 형광등 불빛처럼 어제도 깜빡깜빡 오늘도 깜빡깜빡 해가 뜨면 환한 대낮처럼 빛이 들어와 있을 때는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 풍기며 어두운 저녁이면 텔레비전 화면처럼 오색빛 스위치를 켜시네 창밖의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지나 보내고 떡국을 안 먹어도 세월 나이는 차곡차곡 쌓여서 숫자는 높아져 가고 입으로 들어가는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입 밖으로 나오는 건 긴 한숨에 탄식 소리뿐이네 들어올 듯 말 듯하는 어르신께 반짝반짝하는 순간의 등불이 되어주는 나는 돌봄종사자 빛을 연결하는 스위치 돌봄의 등불을 켜다 장보금

029 어르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낡은 전등 불빛으로 가득 차 있다 방 안 구석마다 외로움이 쌓이고 집 떠난 자식들을 항한 그리움이 천정에 빼곡히 펼쳐져 있다 빛바랜 책갈피 속에 꽂아둔 꽃잎 속에서 고운 추억이 하나씩 바스러져 가고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어린다 어르신을 보고 있으면 가만히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아서라 아린 가슴일랑 추스려 넣자 서둘러 사랑의 기름을 가득 채우고 따뜻한 마음으로 심지를 세워 돌봄의 등불을 켜다 김정란

030 백일장 모음집 배려와 돌봄의 등불을 켜자 어르신 마음까지 환해질 수 있도록 지나가는 화사한 꽃바람도 한 아름 덤으로 안겨 드리자

031 걸으면 넘어질세라, 뛰면 다칠세라 돌보시던 우리 어머니 언제나 맛난 음식 앞에는 배가 부르다 하시고, 좀 전에 먹었다고 하시던 인자하시던 어머니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마에 훈장처럼 주름지고, 그 곱디곱던 손은 거칠어지고 오그라진 그 손길 언제나 식사를 하고도 밥 안 준다고 화내는 어머니 자식들을 몰라보며 집에 가신다고 보따리 들고 돌봄의 등대를 켜다 권현택

032 백일장 모음집 배회하시는 어머니 이내 자식들 밥해 주러 가신다는 어머니 치매로 눈 앞에 가족을 몰라봐도 어머니의 가슴에는 사랑이 남아 있다 그 사랑도 모르고, 오늘도 자식들을 몰라보는 후회할 줄 알면서도 이내 헤매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만다 배고파하는 울 어머니에게 누가 밥 좀 주소 집에 가신다고 배회하는 어머니에게 누군가 길 좀 알려주소 사랑이 가득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로 등대처럼 불을 밝혀주소 불을 켜주소

034 백일장 모음집 오늘은 맑은 날, 엄마가 잘 주무신 날 오늘은 흐린 날, 엄마가 잠 못 이루신 밤 허공을 가르며 손짓하며 누군가를 쫓고 계시나보다 내일 나는 또 멍한 머리로 엄마를 돌본다 돌봄 18년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들 엄마의 한숨에 하얗게 세어가는 내 머리카락 야속한 세월에 눈물만 주르륵 그래도 놓을 수 없는 우리 엄마의 간절한 손 오늘은 내가 딸이라고 아시고 내일이면 모르는 타인이라 외면하는 우리 엄마 엄마의 꿈꾸는 기억에는 나는 행복한 엄마의 딸이다 치매 엄마. 울 엄마 그래도 내일은 돌봄의 불씨를 키워야지 엄마를 사랑하고 보살펴 드리는 사랑의 불씨를 엄마 사랑합니다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돌봄의 불씨를 켜다 박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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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백일장 모음집 어영차 세월을 먹은 머리는 백발이다네 이리 누워 세월가니 날 좀 돌봐주소 불쌍히 여겨 날 좀 돌봐주소 인연 마다 말고 날 좀 돌봐주소 친구 삼아 얘기하고 딸 삼아 목욕하고 그리그리 흐른 시간이 어이 이리 흘렀던가 하늘 보고 바람 쐬니 천상 아니던가 단풍 보고 낙엽 주워 예쁘다 고마우니 하얀 눈 보고 만지니 딴 세상이네 벚꽃 피우고 민들레 피우니 세상이 꽃 축제네 푸른 나무에 어이 이리 좋단가나 휠체어에 실은 행복 웃음꽃 피고 붙잡은 손 따스함에 운동 운동 외치고 디딘 한 발 감동이라 하나 둘 셋 넷 즐겁게 노래하니 말문 트여 흥겹구나 돌봄의 아침을 켜다 최숙희

037 시간 속에 기다림 있고 마음속에 사랑 있었으니 눈웃음에 감사하고 한 발 디딤에 돌봄 아침을 켜본다

038 백일장 모음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도 일손이 느린 데다 섬세함 이 부족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으로 오랫동 안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망설이는데 복지사 선생님께서 4급 어머니시니 면접을 봐보라고 적극 권하셔 서 면접을 갔다. 대상자는 78세 어머니셨다. 첫 말씀이 “안 오셔도 되 는데~ 남편과 싸움 한번 안 하고 잘 지냈는데 이것 때문 에 속상하다” 하시며 울먹이셨다. 복지사 선생님께서 어 머니께서 문제가 있으신 것이 아니라 예방을 위해서라고 잘 다독여주셨다. 첫날 가니 면접 날처럼 “안 오셔도 되는데~” 둘째 날 도 “안 오셔도 되는데~” 셋째 날은 침대에 누워 거실로 나오지 않으셨다. 아버님께서 선생님 오셨는데 어서 나오 라고 하시니 지체하시다 나오셔서 “안 오셔도 되는데~”라 며 같은 말씀에 같은 태도셨다. 넷째 날은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하다가 연필을 식탁에 탁 놓으시고 안 한다 하시며 이제 오지 마라 하셨다. 당 돌봄의 보람을 켜다 옥정원

039 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어머니 오늘 피곤하셔요?” “피 곤한 것이 아니라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했는데 속상하 다”며 우시니 남편분께서 나오셔서 휴지를 주시며 달래 셨다. 울음을 그친 후 “남편분이 참 자상하시고 좋으신 분 같은데 어떻게 만나셨나요?”라고 물으니 어머님의 표정 이 환해지면서 같은 은행에 근무했다며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시기에 추임새를 넣어가며 잘 들어 드렸더니 기분이 나아지셨는지 고맙다 하셨다. 그날 이후부터 안 오셔도 되는데 대신 고맙다는 말씀 을 하시고 예전의 자기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이 속상하다는 말씀도 하시며 프로그램도 짜증 내지 않고 하신다. 좌뇌 우뇌 통폐합 손 놀이가 잘 안 되어 오 른손, 왼손 따로 며칠 동안 반복하고 두 손을 합치면 아 주 서투르셨는데 지금은 노래에 맞추어서 하시고 운동도 잘하신다. 끝나면 수고 많으셨다며 과일 드시고 가시라는 말씀도 하시고 매일 건강축복 기도를 해 주신다. 불편해

040 백일장 모음집 하고 속상해하시며 오지 말라고 하시던 어머니께서 고 맙다며 스승의 날 선물까지 준비해주시고 마음을 많이 열어주시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동안 인지훈련지도자, 뇌체조지도사, 노인스포츠훈 련지도자과정에서 공부한 것을 접목하고 돌봄종사자센 터에 비치된 자료들을 활용하여 어머니의 발전되어 가는 모습과 변화된 태도를 보면서 돌봄의 보람이 아주 크다. 문화센터와 노인대 활동 때보다 돌봄의 활동을 통해서 얻는 보람으로 요즘 나의 일기장은 감사, 기쁨으로 채워 지는 행복한 나날이다. 망설이며 주저하는 나에게 돌봄 의 보람을 안겨주신 복지사 선생님, 필요한 자료들을 복 사해 주시는 쉼터 선생님들, 요양보호사 공부를 추천해 주신 상담사 선생님 등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나의 애송 시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041 〈 꽃자리 〉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042 백일장 모음집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대면교육을 하지 못해 무료하 던 차에 동남지원센터에서 4월에 온라인 줌으로 진행하 는 인지활동교육(신체활동)을 신청하여 참여자로 확정문 자를 받고서 온라인으로 하는 교육인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역삼쉼터에 가서 교안과 교구들을 미 리 받아와서 교안을 보고 예습하였다. 수업 당일 책상 위에 핸드폰을 고정하고 교안과 필요 한 교구 필기도구를 지참하여 이어폰을 끼우고 미리 줌 으로 회의에 참석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이 시작되 기를 기다렸다. 수업 시작되자 나의 우려와는 달리 교육 은 영상도 끊기지 않고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고 강사님 의 차분한 진행도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최고의 강의였 다. 마음속에서 역시 동남센터 짱!이라는 소리가 목구멍 까지 밀고 올라올 만큼 좋은 내용이었다. 찌개 박수, 연 지곤지 박수, 파리 박수, 주먹 가위 보 무얼 만들까? 익 숙한 노래에 맞춰 박수나 율동을 익히면서 나는 집중 또 집중했다. 내일은 센터에 가서 어르신들과 함께 오늘 배 돌봄의 전문성을 켜다 정찬미

043 운 신체활동을 함께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기까지 하였다. 다음날 센터에 가서 어르신들께 어제 배웠던 동작을 알려드리니 어르신들이 곧잘 따라 하신다. 동작을 반복 할수록 어르신들의 호응도와 집중력은 높아지고 눈빛도 반짝반짝 얼굴엔 웃음이 가득~ 성공이다! 순간 나의 자 존감은 높아졌고 돌봄종사자로 근무하는 이 순간이 행 복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좋은 교육을 기획해주신 동 남센터에 감사하고 다음 교육도 꼭 참석해야겠다는 다짐 도 하게 되었다. 지원센터에서 해주시는 교육 하나하나가 나를 돌봄전 문가로 이끌어주는 초석이 되고 있다. 다음엔 어떤 교육 이 있을까 마음이 마구마구 설레고 기다려진다.

044 백일장 모음집 돌봄의 등불을 켜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가족 중 울지 않은 사람은 오빠가 유일했다.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불규칙적으로 밀려드 는 조문객들을 응대하는 일도 오빠의 몫이었다. 틈틈이 쪽잠을 자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조문객이 뜸해진 새벽 녘이면 기어이 몸을 누이고 마는 우리와 달리, 오빠는 눕는 법도 없었다. “잠시 눈 좀 붙여.” 혼자 잠들기가 겸연쩍어 슬쩍 한 마디 던지고는 오빠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이내 잠들어버렸다가 한 참 만에 일어났을 때도 오빠는 늘 깨어 있었다. 벽에 등 을 대고 앉아 영정사진 속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 을 때가 많았다. 슬픔이라는 부채에 시달리며 때때로 부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우리와 달리 오빠는 모든 행동 이 자연스러웠다. 애써 웃음을 감추는 법도 없었다. 돌아 보니 그것은 준비된 사람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오빠는 장남으로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기대를 한 몸 에 받고 자랐다. 그러나 오빠는 기대 속에 성장하기보 박서진

045 다 위축되었고 결국 엇나가기 시작했다. 오빠의 오랜 방 황을 멈춰 세운 것은 엄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일이었다. 시집간 언니는 수화기 너 머로 울기만 했고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오빠는 두말 않고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엄마 곁을 지켰다. 언니와 함께 자질구레 한 일을 돕기는 했지만 중심축은 오빠였다. 가족들은 점 점 오빠를 의지했고, 엄마는 오빠의 돌봄에 익숙해했다. 가끔 오빠를 대신해 병원에서 하룻밤 엄마를 돌볼 때에 도 몇 번이고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엄마가 키위 를 드시고 싶다는 건 생과일이 아닌 키위 음료를 말하는 것이란 걸, 음료를 드실 때 빨대는 흡입하는 데 힘이 들 어서 싫어하신다는 걸, 가족 중에 유일하게 오빠만 알고 있었다. 퇴원 후 요양을 하던 어느 날 밤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 화된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에도 오빠는 마치 예상했던 일이었다는 듯 침착하게 대응했다. 엄마를 돌

046 백일장 모음집 보며 엄마를 붙잡고 있던 병마의 기질에 대해 조사하고 대비했었다고 했다. 엄마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는 사실을 담당의로부터 전달받기 전부터 오빠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옷장에서 앨범을 뒤적여 엄마 의 영정사진을 골랐고, 엄마의 휴대전화를 살펴 지인들 의 연락처를 찾아두기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슬픔에만 목메던 우리와 달리 오빠는 가 까운 장래를 예측하고 정확한 시기에 해야 할 일을 준비 하고 시행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암흑 속에서 오빠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모두 등불에 의지해 길고 지난한 그 길을 지나왔다. 엄마가 떠난 후 오빠는 한동안 말없이 두문불출하다 가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평 생 어떠한 일에도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은 적이 없었던 오빠는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실습까지 마치며 정식 사회 복지사가 되어 요양시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육체적 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고 벌이도 변변찮아 보이 지만 오빠는 불평하는 법이 없다. 돌봄은 빛나는 직업이 아니라 빛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이 빛의 반경이 넓을 수록 많은 사람들이 안정과 안락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047 까 돌봄이란 무언가를 살려내는 일이라기보다 무엇이든 지켜내는 일이 아닐까.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오빠가 많 은 이들을 품는 빛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048 백일장 모음집 어느 봄 햇볕 좋은 날, 나는 집 앞에서 제기차기를 하 며 놀고 있었다. “거 시끄럽다 마. 저리 밖에 나가 놀아꾸마” “와 뚱땡이 할머니다” 아이들이 삽시간에 우‐하는 소리를 내며 밖으로 흩어 졌다. 그리고 집 앞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모여 “뚱땡이 할머니는 뚱뚱해서 걷지 못하고 굴러다닌데요~ 문지방에 끼어 데굴데굴 굴러다닌데요~” 하며 합창했다. 그 소리에 할머니 아들이 “이놈 새끼들” 하며 소리를 지르자 우리는 무서워 이크, 이크 거리며 동네 뒷산 혹 은 공터로 흩어지기 일쑤였다. 다세대 집이 다닥다닥 붙 어 있는 달동네에서 해외로 돈 벌러 가신 아버지, 새벽 4 시에 나가 밤 12시에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8살, 11살 우리 남매를 돌봐주는 사람은 동네의 같은 처지인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자신의 집에서 싸온 밥과 반찬을 먹고 하루 종일 동네에서 나가 놀다 저녁이면 늦게 들어 돌봄의 상생을 켜다 정양선

049 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다 잠들었던 시기의 기억. 그리 고 옆집 뚱땡이 할머니. 내게 뚱땡이 할머니는 괴팍하고 무섭고 지나치게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어른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가끔씩 이리저리 싸주시던 반찬, 옷이 더럽 다며 새 옷으로 갈아입혀주며 때론 호통을 치며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시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뚱땡이 할머니는 나름대로 우리를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어 집에 갔을 때 뚱땡이 할머니가 많이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뇨 합볍증으로 앞이 잘 안 보이시고 그런다고 엄마가 걱정하 시는데 간호인을 당장 구할 수 없어 걱정이라고 하셨다. 돈이 적어 할 사람이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문득 내가 생각 없이(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툭) “내 가 해볼까”라고 말했다. “네가?” 엄마는 엄청 황당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너 혼자 씻기도 귀찮아 하는 네가 무슨 남을 건사해”

050 백일장 모음집 “아니 새로 사람 구하기 전에 그 텀이라도 내가 봐주면 된다는 말이지” “됐다. 너 행여 이상한 소리하면 혼난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셨지만 나는 문득 ‘안 될 건 뭐람’ 하며 중얼거렸다. 그날 오후, 집 앞 평상에 앉아 모기를 쫓으며 책을 읽 고 있는데 옆집 뚱땡이 할머니네 아저씨가 문을 닫으면 서 자물쇠를 걸어 잠그시는 게 아닌가. “저기요” 아저씨가 문에 자물쇠를 걸고 열쇠를 돌리며 나를 쳐 다본다. “왜? 무슨 용무라도 있는 게냐?” “아, 저기 안에 사람 있지 않나요?” “혹시 누군가 들어가서 나쁜 일이 생길까 봐 그렇지.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아저씨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씀하셨다. “그럼 문 잠그지 말아주세요.” “그럼 어떡하라고?” “제가 잠시 돌봐드릴게요. 방학 중이라 학교 가지 않아 도 되고 옆에서 책 읽으며 할머니 말벗이 되어드릴게요.”

051 “정말 괜찮은 거니?” 아저씨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그럼요. 저 어릴 적에 할머니가 많이 돌봐주셨는걸요.” “그럼 이거라도” 아저씨가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몇 장을 뒤적거리신다. “괜찮아요. 제가 필요할 때 말씀드릴게요.” 머쓱거리는 아저씨에게 손을 내미니 아저씨가 열쇠를 쥐여 주셨다. “걱정마세요. 저도 생각이 있으니까요.” “그래… 진짜 미안하다. 어쿠 시간이 이렇게… 일단 다 녀오마” 아저씨가 종종 걸음으로 골목길로 사라지는 것을 보 고 나는 자물쇠의 열쇠를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 제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듯한 커다란 괘종시계 초침 소 리, 방 한 칸을 지나쳐 살짝 열린 작은방의 문틈 사이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온갖 약통과 약에 취한 듯 잠 들어 계신 할머니. 나는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 벽 에 기대어 앉아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책은 고전이었 지만 사실 책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책을 살 짝 내려 보이는 틈 사이로 할머니를 살폈다.

052 백일장 모음집 뚱땡이 할머니란 별명이 무색하게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불과 10여 년도 안 되어서 이렇게 나이가 드 시다니. 무엇보다 늙은 사람에게 나는 특유의 냄새도 없 으셔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약 냄새 빼고 가구의 오래된 냄새 말고는 좋은 냄새가 났다. 생각해보니 뚱땡이 할머니에겐 항상 좋은 냄새가 났다. 조금 있다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물을 찾으시는 듯했다. 손을 더듬거리시며 ‘아 앞이 잘 안 보이시지’ 하 는 생각에 나는 얼른 다가가 잔에 물을 따라 손에 쥐여 드렸다. “누구냐? 용석이는 아닌 것 같은데” 용석이는 뚱땡이 할머니 아들 이름이다. “아, 저 양선이에요.” “양선?” 뚱땡이 할머니의 감긴 눈이 뜨였으나 초점이 없는 눈 이었다. 어딜 보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네. 옆집 양선이요.” “아, 그 말괄량이 선 머슴애” “큭큭… 맞아요.”

053 매일 머스마처럼 뛰어 다닌다고 혼났던 기억이 나 나는 웃었다. “그런데 여긴 네가 웬일이냐?” “방학이라 내려왔어요.” “그렇구나…” 할머니는 별반 상관없다는 듯 다시 누워 잠을 청하셨 다. 그리고 한 시간 혹은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가셨 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어깨를 빌려 부축해 드렸다. 걷지 못하시는 게 아니라 걷기 힘들어 보였다. 생각보다 건강 상태가 최악이 아니라 다행이다, 라고 나는 안심했다. 오후 시간이 지나고 나도 좀 익숙해져서 방바닥에 눕 거나 집에서 과자 같은 것을 가져와 조금씩 먹곤 했다. 문득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 내가 옆에 있는지 살피시고 다시 잠이 드셨다. “네가 어렸을 때 아주 작고 귀여웠는데 나는 네가 아주 아 기 때부터 너를 봐왔단다”라고 중얼거리기시도 하며……. 내 어린 시절은 당연히 나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내가 기억이 생길 때즘부터 나는 이 작은 마을에 살았 다. 나는 이 일이 나와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할머니와의 동거가 방학 기간 두 달 동안 지속되

054 백일장 모음집 었다. 처음 잠만 주무셨던 할머니와의 동거가 제법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첫날에 는 어색해서 주무시는 척을 하셨던 것이다. 나도 어색해 서 책만 읽었고 말이다. 우리는 오후의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오후 두 시 쯤이면 재밌는 사연의 신나는 방송이 많이 나와 그랬던 것 같다. 그 두 달간의 기억이 내 인생의 신조를 바꾸었다. 할머 니와 당연히 겨울 방학도 같이 할 줄 알았고 집에 가는 길엔 어김없이 인사드리고 하루이틀 같이 지냈었는데 그 해 겨울이 오기 직전인 초겨울에 할머니는 황망히 떠나 셨다. 모두들 호상이라고 해도 장례식장에 사람 별로 없는 쓸쓸한 장례식장이었다. 기말고사를 일주일 남겨둔 시점 에 내려가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할머니 아들 분이 내게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내밀었다. 뭔가 싶어 열 어봤더니 꾸불꾸불한 글씨로 “아가야 고맙다”라고 써 있었고 동전, 천원짜리 지폐, 맛있는 사탕, 간식, 할머니 가 좋다라고 생각해 둔 것을 모아두신 것 같았다. 할머 니가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055 “그리고 이거…” 아저씨가 또 다른 흰 봉투를 내미셨다. 느낌상 돈인 것 같아서 받을 수 없다 했다. “아니 저번도 그렇고 겨울에 오면 그때 뭘 등록금이든 도와주어야지 했는데 작지만 받아둬. 어머님이 당부하 신 거야. 유언이시기도 하고…….” 나는 그 돈을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여름에 사실 난 학 교생활에 적응도 하지 못하고 남들은 알바에 해외여행 을 간다 했을 때 원룸비 나가는 것을 감안할 때 내려오 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내려왔다. 친구가 중요한 시기에 마땅히 친구가 없던 시절, 옆집 할머니는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학교를 다닐 때 도 너무 힘들고 그날의 일을 털어놓고 싶을 때 할머니에 게 전화를 걸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괜찮구마. 다 … 지나간다…… 인생살이는 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 이고 또 내가 그런 일 때문에 힘들었구나 생각하기 마련 이고… 그러니 걱정마라 아가야. 다 지나간다…….” 그러면 좀 더 산뜻한 기분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나이도 먹고 그때보다 인생살이의 방법 을 알아도 지나가다 뚱땡이 할머니 닮은 분만 봐도 묘하

056 백일장 모음집 게 가슴이 쓰리고 또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할머니가 돌 아가신 그해 겨울, 난 학교에서 2등을 했고 등록금의 절 반만 지원받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그 금액이 뚱땡이 할머니가 내게 남기신 금액과 비슷한 것에 놀랐다. “하나님은 딱 부족하신 만큼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부 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인 게야. 그래서 난 내가 이 정도 아픈 것에 감사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감 사할 것투성이야. 눈이 머니 내가 봤던 세상이 더 선명 하고 아름다워졌거든.” 코로나 시대에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도 할 머니의 말을 생각하면 살아갈 힘이 된다. 생각해보면 유명 방송인의 말처럼 내가 할머니를 돌봐 드렸던 것이 아니라 내가 할머니에게 돌봄을 받았던 것 이 아닐까. 기회가 된다면 그 돌봄을 받고 싶다. 기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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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모음집 ‐ 2022

062 백일장 모음집 돌봄을 위해 출근하는 길 오늘도 잘할 거야 다짐하며 걷는 길 내 마음엔 봄처럼 설렘이 가득 희망을 품고 어르신 댁으로 간다 종종걸음 걸어 어르신 댁 도착하니 어지럽혀진 집 안 초췌한 어르신 모습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싹싹 쓱쓱 정리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 여름이 된다 말끔하게 정리된 집 안 멋진 신사가 되신 어르신 모시고 산책 나가는 길 동네 어르신 만나 인사하면 어쩜 저리도 고울까 복 받을 거야 한마디 말씀에 결실의 가을을 느낀다 돌봄의 사계절 정찬미

063 돌봄 일 마치고 퇴근하는 길 ‘또 언제 와?’ 어르신 눈에 아쉬움 가득 순간 내 마음에 부는 휑하게 부는 겨울바람 어르신 등 토닥이며 내일 또 올게요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옷깃을 여민다

064 백일장 모음집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면 나는 ‘함께’라고 지어주겠습니다 어느덧 피어난 봄꽃 따라 빙그레 함께 웃었던 하루 그 봄이 어여뻤던 것은 우리도 눈을 맞추고서 서로에게 화사한 봄을 건넸기 때문입니다 무더위에 매미만이 우렁차게 기세를 드높일 때 문득 흘린 땀방울, 차마 마를 새 없이 당신의 정겨운 손길 따라 손수건에 스며들었던 하루 그 여름이 푸르렀던 것은 말보다 깊은 미소 속에 다정한 여름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낙엽이 춤을 추다 말고 창가에 잠시 걸터앉아 자유로운 쉼을 만끽할 때 서로의 손을 잡고서 그 풍경을 따듯하게 바라보았던 하루 ‘함께’라는 이름 김혜인

065 그 가을이 아늑했던 것은 오고 가는 온화한 말들로 지친 마음 다독이며 가을빛 마음을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소복이 쌓인 눈길 따라 우리들의 마음도 자국으로 남기고서 이야기로 하얀 세상 색칠하던 하루 그 겨울이 포근했던 것은 뒷모습 쓸쓸할 틈 없이 맑은 온기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과 나 그렇게 우리가 되어 서로에게 기댄 마음 크고 넓어라 함께라서 행복했던 사계절 향기롭게 추억하며 ‘함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계절을 도란도란 걸어나가요

066 백일장 모음집 가을 그해 어르신과 첫 만남, 늘 그렇듯 첫 만남은 낯설고 설레었다 따듯한 미소가 아름다운 어르신은 반갑게 날 맞이해주신다 9월 한여름의 더위도 한풀 꺾였다 성큼 다가온 가을, 어르신과의 앞으로 만남이 기대된다 10월 어느덧 어르신과 소소한 정을 나누고 있었다 어제 늘 맘 쓰이던 막내아들과 전화 통화에 기뻐하시는 어르신의 얼굴을 보았다 수면제 없이는 잠 못 이루던 밤들 막내아들과의 통화에 오늘은 달콤한 잠을 주무셨다 11월 가을의 끝자락이다 어르신 댁의 창밖에 노오랗게 물들어 가는 낙엽이 동화 같은 풍경을 지어낸다 돌봄의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박진하

067 겨울 자전거를 타고 어르신 댁을 방문하면 어느새 내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어르신 댁에 들어서니 정겨운 호박 고구마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한다 추운데 늘 애쓴다며 내게 방금 구운 호박 고구마를 내미셨다 “보호사님, 따듯할 때 어여 먹어요” 12월의 칼바람도 녹여줄 따뜻한 고구마는 내 마음에 어르신의 따스한 정과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해 겨울은 어르신과 오순도순 옛 추억을 나누며 지나간 향수를 그리워했다

068 백일장 모음집 그리고 봄 어르신이 곧 이사를 가신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이 시작된다 정들면 헤어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어르신과 싱그러운 여름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다 어르신 정말 감사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070 백일장 모음집 도다리쑥국을 대접해드렸더니 민경준 할머니는 봄이 되었다 할머니의 눈썹에 고드름이 녹고 할머니의 귓가에 진달래가 피었다 할머니는 봄이 오랜 친구 같다 하셨다 잘 익은 수박 한 통 전해드렸더니 한정윤 할아버지는 여름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손바닥에 원두막이 지어지고 할아버지의 눈동자에 수평선이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여름엔 게을러져도 괜찮다 하셨다 직접 주운 도토리로 묵을 쒀드렸더니 김재선 할머니는 가을이 되었다 할머니의 손톱에 감물이 들고 할머니의 머리카락에 갈대가 빛났다 할머니는 가을엔 모든 것이 고맙다 하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상우

071 창고에 연탄을 넉넉히 넣어드렸더니 이필성 할아버지는 겨울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주름살에 첫눈이 내리고 할아버지의 입술에 과메기 기름이 돌았다 할아버지는 겨울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하셨다

072 백일장 모음집 봄에는 분홍빛 벚꽃잎으로 포근한 이불을 만들어줄게요 포근한 봄 이불에 선명한 초록빛 줄기로 자수를 새겨 산뜻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게 오랫동안 봄을 느낄 수 있게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게요 여름에는 햇볕을 막아주는 양산으로 무더운 더위에 가라앉은 숨을 틔워줄게요 양산을 쓰고 바닷가에 발을 들이면 바다의 짠내가 코끝을 스치고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파도의 노래가 우리를 반겨줄 거예요 파도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당신의 궁금증을 함께 이어갈게요 사계절과 함께 하는 우리 신금주

073 가을에는 길 위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잎으로 당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줄게요 사그락거리는 잎들과 맞닿으면 잎들은 가을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며 함께 노래할 거예요 겨울에는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계절의 끝이 왔다는 걸 알려줄게요 벤치 위 쌓인 눈을 털어내고 방금 나온 따뜻한 붕어빵을 후후 불며 계절의 끝인 겨울에서 다시 계절의 시작이 될 봄이 올 때까지 서로 함께 하겠다고 미소를 지을게요

074 백일장 모음집 서리 내린 겨울이 소곤거린다 이제는 봄이 오니 시린 몸을 녹이자 홀로이 떠는 이는 고즈넉한 새벽을 치르고 봄은 창문틀 너머로 들어선다 곰살맞은 봄을 기다리는 주름진 손은 이윽고 찬 겨울의 바람을 떠나보내고 돌보는 이의 얼굴을 만나 두 팔 벌려 풍성한 마음을 껴안는다 그리고 다사로운 봄이 소곤거린다 내미는 손길을 맞이하자 다가올 겨울에도 함께하자 돌봄의 봄을 맞이하자 이다인

075 눈이 어두워 글씨가 안 보이네 귀가 어두워 들리지 않네 이가 다 빠져서 씹을 수 없네 그래도 괜찮아요 언제나 당신 곁엔 요양보호사 계란 하나 탁 깨뜨려 새우젓 간을 하고 전자레인지 3분 외출 노오란 계란찜 탄생 반 공기나 되는 하얀 밥 말아 오몰오몰 맛있네 맛있어 행사처럼 치러지는 아침 식사 갤러리에 저장된 꽃 사진 시리즈 하나하나 짚어가며 개나리 진달래 철쭉 복사꽃 민들레 제비꽃 모란 작약. 와! 참 잘하셨어요 그리고 난초 라일락 장미 그다음은 모르겠네 모르는 꽃은 몰라 꽃 그래도 괜찮아요! 신계숙

076 백일장 모음집 몰라 꽃 한 송이 피워가며 한낮의 봄날은 무르익어가고 가지 말라고 꼬옥 잡은 두 손 내일도 또 올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꼽으며 한 밤 자면 온다고 세 살 아가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두루마리 휴지 위에 눈물로 얼룩져도 아픈 마음 뒤로하고 안녕이라고 말하며 그래도 괜찮아요 내일이 있으니까요 목단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는 봄날 어르신! 사랑이라는 나무를 심고 기다림이라는 열매 속에 찔레꽃 향기를 마음껏 맡아보아요

078 백일장 모음집 “언니, 나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어!”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에서 막냇동생이 느끼는 기쁨의 크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요양보호사가 된 동생은 어르신들을 살갑게 살 펴드리고 돌봄 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최고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노라고 포부를 밝혔다. 동생은 이전부터 쭉 돌봄 노동을 하고 싶다고 말해 왔 었다. 과거 아버지를 극진히 돌봐주었던 요양보호사의 사계절을 곁에서 지켜본 후 내린 결정이었다. 병을 앓던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며 봄과 여름을 안겨주었고, 가 을과 겨울 동안 아버지를 지켜보는 우리 가족들의 마음 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던 요양보호사의 진심 어린 모 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로부 터 돌봄 서비스를 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 느꼈던 돌봄의 사계절은 늘 따스함으로 남아 있다.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병주 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본가로 돌아왔을 때, 우리 5남매 돌봄의 사계절 최옥숙

079 는 아버지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생 동안 집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만 하다가 조 용히 눈 감은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고, 우리가 아버지와 이렇다 할 좋은 추억이나 정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당뇨약과 심장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폐 질 환 때문에 기침도 끊이질 않았었다. 어딘가 모르게 거동 도 불편해 보였는데, 몇 해 전 겪은 경미한 뇌졸중 때문 이라고 했다.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식 된 입 장에서 병든 부모를 내칠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5남매 가 두 달씩 돌아가며 모시기로 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두 달은 마치 1년처럼 길게 느껴졌 다. 고집 세고 까탈스러운 성격도 마음에 안 들었고, 아 버지를 보면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 라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젊었을 적 성 격을 고치지 못한 아버지는 자식들의 집을 옮겨 다닐 때 마다 갖은 풍파를 일으켰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뇌졸중이 찾아왔고, 그 일로 몸의 좌측이 마비돼 거

080 백일장 모음집 동조차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성격도 유별난 데다가 거동까지 불편해진 아버지를 전 적으로 돌보겠다고 나서는 자식은 없었다. 그건 나도 마 찬가지였다. 남편과 자식들을 설득해가며 정이 없는 아 버지 곁에서 전적으로 수발을 들 자신이 없었다. 고민스 럽던 차에 제부가 조심스럽게 돌봄 노동 얘기를 꺼냈다. 치매나 뇌 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환을 앓아 일상생활 이 곤란한 65세 노인을 대상으로 요양보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신체 활동 및 일상생활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 얼마 후 요양보호사가 큰남동생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 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버지는 돌봄 서비스를 아무 불만 없이 잘 받으셨 다. 아마도 자식들과 달리 당신의 말을 꼼꼼하게 잘 들 어주고 살펴주는 요양보호사를 더 편하게 느끼셨던 것 같다. 괴팍해서 감당하기 힘든 성격을 가진 아버지도 그 요양보호사 앞에서는 고분고분 해지셨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두 달씩 돌아가며 모시기 로 한 약속을 바꿔, 장남인 큰남동생이 사는 본가에서 계속 아버지를 모시기로 논의했다. 당시 아버지가 요양 보호사를 믿고 잘 따랐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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