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리도 수차례 들었다. 그때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내가 불쌍하다는 희한한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다 보니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 었다. 가난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니 가난하게 낳아준 부모 원망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엄마는 그때마다 무슨 죄인이 된 것처럼 막 나가는 나 를 달래고 미안하다는 말만 하셨다. 집이 부끄러워서 반 친구한테 항상 집 위치를 숨겨왔고 초라한 행색의 엄마 를 누구한테 말하기도 싫어서 학교 운동회 때도 엄마에 게 오지 말라고 했다. 남들 부모는 최대한 차려 입고 오 는데 엄마는 몸빼 바지라 불리는 항아리 고쟁이를 입고 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엄마 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를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 고 죄스럽지만, 그 시절에는 “부모가 무능해서 이렇게밖 에 못산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렇게 막 나가던 유년기를 지나 대학을 붙을 리가 만무했다. 그 렇지만 당신 스스로가 못 배워서 가난한 생활에서 못 벗어난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모님은 아들만이라도 대 학 학사모를 씌워주는 것이 소원이었고 대학을 갈 생각 조차 없었고 꿈은 더더욱 없었던 나한테 거의 빌다시피
RkJQdWJsaXNoZXIy MTMyNzcx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