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모음집

165 만가만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할머니는 말했다. 할미가 미안타, 내가, 내가, 정신이 없어서. 한 음절 한 음절 끊어 내며 겨우겨우 신음하듯이 뱉어냈다. 잔뜩 메말라 버린 입에서는 쇳소리를 달싹였다. 할머니의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으나, 이상하게 아 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반나절 동안 돌본 내가 비 루먹어 불쌍했다. 옆에서 바라본 할머니의 눈동자에는 무엇도 담겨 있지 않았다. 세상사에 물들어 눈망울은 혼 탁했고, 시선은 먹구름처럼 흐렸다. 온통 까맣게 가라앉 은 심연, 우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심해, 이것들 전부 가 할머니 얼굴 곳곳에 스며들었다. 때마침 괘종시계에서 6시를 알리는 야트막한 종소리 가 울렸다. 확실히 할머니 집은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 과 동떨어진 장소였다. 잠깐 얼굴만 보려고 현관에 발을 들이면 금세 밥을 먹고 가라며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저 녁만 간단히 요기할 생각으로 식사를 마치면 해가 뉘엿 뉘엿 인사했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능청스레 ‘아이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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