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모음집

168 백일장 모음집 이 드디어 범람했다. 기억의 상실을 비료삼아 꽃봉우리 를 틔운 게 분명했다. 텁텁하면서도 시큼한 봄날의 공기 가 바람결에 실려 할머니 얼굴에 스쳤다. 콧잔등을 부 르르, 떠는 모습이 수동적이면서도 애달파보였던 건 단 순한 착각이었을까.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핏기가 없 어 보이는 얼굴에는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메말라갔 다. 건조한 삶에 회의감이라도 느낀 건지,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매일같이 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노인요양사와 할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밖을 나선 할머니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한번은 도로 한복판에서, 다른 날은 한강대교 근처에서, 또 어느 날은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지하철 역에서 신고를 받았다. 무언가 잃은 사람처럼 할머니의 공허한 눈동자가 옛 고향을 향했다. 정지한 시간 속에서 자꾸만 기억을 쏟아낸 탓일까, 귀 환 본능이 뒤늦게 도지기라도 한 건지 이미 도로명 주소 로 바뀌어 형체도 알 수 없는 지역을 입에 올렸다. 폐허 가 됐다가 높다란 빌딩이 올라간 지 오래인 땅이었다. 그 사실을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할 당신이 구태여 엄마를 찾을 때면 어찌할 바가 없었다. 세상에 있지도 않은 고 향을 찾는 건 그나마 참을 만 했다. 그러나 오늘처럼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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