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모음집

054 백일장 모음집 었다. 처음 잠만 주무셨던 할머니와의 동거가 제법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첫날에 는 어색해서 주무시는 척을 하셨던 것이다. 나도 어색해 서 책만 읽었고 말이다. 우리는 오후의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오후 두 시 쯤이면 재밌는 사연의 신나는 방송이 많이 나와 그랬던 것 같다. 그 두 달간의 기억이 내 인생의 신조를 바꾸었다. 할머 니와 당연히 겨울 방학도 같이 할 줄 알았고 집에 가는 길엔 어김없이 인사드리고 하루이틀 같이 지냈었는데 그 해 겨울이 오기 직전인 초겨울에 할머니는 황망히 떠나 셨다. 모두들 호상이라고 해도 장례식장에 사람 별로 없는 쓸쓸한 장례식장이었다. 기말고사를 일주일 남겨둔 시점 에 내려가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할머니 아들 분이 내게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내밀었다. 뭔가 싶어 열 어봤더니 꾸불꾸불한 글씨로 “아가야 고맙다”라고 써 있었고 동전, 천원짜리 지폐, 맛있는 사탕, 간식, 할머니 가 좋다라고 생각해 둔 것을 모아두신 것 같았다. 할머 니가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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